기후변화가 전 지구적 위기로 대두되면서 탄소중립(Net-Zero)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습니다. 특히 기업들은 정부 규제, 투자자 압력, 소비자 인식 변화 등으로 탄소중립 전략 수립과 실행에 적극 나서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는 상당한 비용과 투자가 수반됩니다. 과연 기업들은 어떤 전략으로 탄소중립을 추진하고 있으며, 그 비용과 경제적 효과는 어떻게 분석할 수 있을까요? 오늘은 최신 데이터를 바탕으로 기업들의 탄소중립 전략과 비용 효과에 대해 심층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글로벌 탄소중립 추세와 기업 대응
탄소중립 목표 설정 현황
최근 글로벌 탄소중립 선언은 기업 차원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국제 환경단체 CDP(Carbon Disclosure Project)에 따르면, 2025년 기준 전 세계 상위 2,000대 기업 중 약 52%가 2050년 이전 탄소중립 목표를 설정했습니다. 이는 2020년(21%)에 비해 2.5배 증가한 수치입니다.
국내에서도 변화가 뚜렷합니다. 한국경제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2025년 기준 국내 100대 기업 중 76%가 탄소중립 또는 감축 목표를 공식 선언했으며, 이 중 절반 이상이 2050년 이전 탄소중립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특히 삼성전자(2050년), SK그룹(2050년), 현대자동차(2045년), LG화학(2050년), 포스코(2050년) 등 주요 대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중견·중소기업으로도 확산되는 추세입니다.
탄소중립 추진 동기
기업들이 탄소중립을 추진하는 동기는 다양합니다. 대한상공회의소의 '기업 탄소중립 인식조사'에 따르면, 기업들은 △규제 대응(72%) △기업 이미지 제고(65%) △신사업 기회 포착(54%) △ESG 투자 유치(48%) △공급망 요구 대응(43%) 등을 주요 동기로 꼽았습니다.
특히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본격 시행,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시행 등 주요 수출국의 규제 강화는 수출 중심 국내 기업들에게 큰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KOTRA 자료에 따르면, CBAM으로 인해 발생할 국내 기업의 추가 비용은 연간 최대 1.8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기업들의 주요 탄소중립 전략
기업들은 각자의 산업 특성과 경영 환경에 맞는 다양한 탄소중립 전략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주요 전략을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1. 에너지 효율화 및 재생에너지 전환
가장 기본적이고 효과적인 탄소중립 전략은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한국에너지공단의 분석에 따르면, 국내 제조업의 에너지 효율화를 통한 온실가스 감축 잠재량은 연간 약 4,200만 톤CO₂eq로, 이는 국가 총 배출량의 약 6%에 해당합니다.
글로벌 기업들의 재생에너지 조달 이니셔티브인 RE100에는 2025년 기준 전 세계 400여 개 기업이 참여 중이며, 국내에서도 SK, LG, 한화 등 50여 개 기업이 가입했습니다. 애플은 이미 2020년 전 세계 사업장의 100% 재생에너지 사용을 달성했으며, 구글은 2030년까지 24시간 무탄소 에너지(24/7 Carbon-Free Energy) 사용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국내 기업 중에서는 SK그룹이 2025년까지 RE100을 위해 약 7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며, 삼성전자는 2050년까지 모든 해외 사업장의 재생에너지 100% 전환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2. 생산 공정 및 제품 혁신
제조 기업들은 생산 공정 개선과 저탄소 제품 개발을 통해 탄소 배출을 줄이고 있습니다. 특히 철강, 시멘트, 화학 등 탄소 집약적 산업에서 이러한 혁신이 활발합니다.
포스코는 2050년 탄소중립을 위해 수소환원제철 기술(HyREX)을 개발 중이며, 이를 위해 2050년까지 약 40조원을 투자할 계획입니다. 현대자동차는 2040년까지 글로벌 판매 차량의 100%를 전기차와 수소차 등 친환경 차량으로 전환하는 목표를 세우고, 연간 약 9~10조원을 친환경 기술 개발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LG화학은 '부산물 사이클링 기술'을 통해 석유화학 공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를 포집해 화학제품으로 재사용하는 기술을 개발했으며, 이를 통해 연간 약 14만 톤의 탄소 배출을 감축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3. 가치사슬(Value Chain) 관리
기업들은 자사 직접 배출(Scope 1)과 에너지 간접 배출(Scope 2)뿐만 아니라, 가치사슬 전반의 간접 배출(Scope 3)까지 관리 범위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BCG의 분석에 따르면, 대부분 산업에서 Scope 3 배출이 전체 탄소 발자국의 70~80%를 차지합니다.
애플은 2030년까지 전체 제품 생애주기에 걸친 탄소중립을 목표로, 200여 개 주요 협력업체에도 100% 재생에너지 사용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월마트는 '프로젝트 기가톤'을 통해 2030년까지 공급망에서 10억 톤의 탄소 배출을 감축하는 목표를 설정했습니다.
국내에서는 삼성전자가 2023년부터 거래액 기준 상위 100대 협력사의 재생에너지 전환을 지원하고 있으며, SK그룹은 협력사의 탄소 감축을 위한 'Net Zero 얼라이언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4. 탄소 상쇄 및 제거 기술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탄소 배출을 상쇄하기 위한 전략도 중요합니다. 기업들은 탄소 크레딧 구매, 산림 복원, 탄소 포집·활용·저장(CCUS) 기술 등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2030년까지 탄소 네거티브(Carbon Negative)를 달성하기 위해 10억 달러 규모의 '기후 혁신 기금'을 조성했으며, 2050년까지 창사 이래 발생한 모든 탄소를 제거하는 목표를 설정했습니다.
국내에서는 SK그룹이 2021년 약 1,000억원을 투자해 미국 탄소 포집 기업 '8리버스'의 지분을 인수했으며, 포스코는 연간 50만 톤의 탄소를 포집할 수 있는 CCUS 설비를 2030년까지 구축할 계획입니다.
탄소중립 전략의 비용과 경제적 효과
탄소중립 전환의 소요 비용
탄소중립으로의 전환에는 상당한 비용이 필요합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전 세계가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연간 약 4조 달러(약 5,000조원)의 투자가 필요합니다.
국내 상황을 살펴보면,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의 추정에 따르면, 한국이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2050년까지 약 1,200조원의 투자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는 연평균 GDP의 약 2.8%에 해당하는 금액입니다.
산업별로는 재생에너지 인프라(460조원), 에너지 효율 개선(320조원), 수송 부문 전환(280조원), 탄소 포집 및 수소 인프라(140조원) 등에 투자가 집중될 것으로 분석됩니다.
기업별 탄소중립 투자 계획
주요 국내 기업들의 탄소중립 관련 투자 계획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SK그룹: 2025년까지 탄소 감축과 친환경 사업에 약 30조원 투자 계획
- 삼성전자: 2030년까지 온실가스 감축 및 재생에너지 전환에 7조원 이상 투자
- 현대자동차그룹: 2025년까지 친환경차 및 미래 모빌리티에 41조원 투자
- LG화학: 2050년 탄소중립을 위해 2030년까지 약 10조원 투자
- 포스코: 수소환원제철 등 저탄소 기술 개발에 2050년까지 40조원 투자
이러한 대규모 투자는 기업의 단기적 수익성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한국신용평가의 분석에 따르면, 탄소중립 투자로 인해 국내 제조기업의 영업이익률은 단기적으로 평균 1.2~1.8%p 하락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투자 대비 경제적 효과
그러나 장기적 관점에서 탄소중립 투자는 다양한 경제적 효과를 창출할 수 있습니다.
첫째, 에너지 효율화를 통한 비용 절감 효과가 있습니다. 한국에너지공단의 분석에 따르면, 국내 기업들의 에너지 효율화 투자는 평균 3~4년 내에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으며, ROI(투자수익률)는 약 25~30%에 달합니다.
둘째,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 창출이 가능합니다. 블룸버그NEF에 따르면, 글로벌 친환경 에너지 시장은 2025년 약 1조 5천억 달러 규모로, 2020년 대비 2배 이상 성장했습니다. 특히 재생에너지, 전기차, 에너지 저장 시스템(ESS), 그린 수소 등 분야의 성장이 두드러집니다.
셋째, 기업 가치 제고 효과가 있습니다. MSCI의 연구에 따르면, 탄소 배출이 낮고 기후변화 대응 전략이 우수한 기업들은 그렇지 않은 기업들보다 주가 수익률이 평균 3.7%p 높게 나타났습니다. 또한 탄소중립 선언 기업들은 ESG 평가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해 자본 조달 비용을 낮출 수 있습니다.
산업별 비용과 기회 분석
탄소중립의 비용과 기회는 산업별로 상이합니다.
에너지 집약적 산업(철강, 시멘트, 석유화학 등)은 탄소중립 전환 비용이 가장 높습니다. 한국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이들 산업의 탄소중립 전환 비용은 매출액 대비 약 7~12%에 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러나 이들 산업은 혁신적인 저탄소 기술 개발을 통해 새로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IT 및 서비스 산업은 상대적으로 전환 비용이 낮으며(매출액 대비 1~3%),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탄소 감축 솔루션 제공 등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할 수 있습니다. 삼성SDS, LG CNS, SK C&C 등 IT 서비스 기업들은 이미 탄소 관리 플랫폼, 스마트 에너지 솔루션 등을 개발해 제공하고 있습니다.
금융 및 보험 산업은 친환경 금융상품 개발, 기후 리스크 관리 서비스 등을 통해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할 수 있습니다. KB금융그룹, 신한금융그룹 등은 이미 ESG 채권 발행, 녹색 대출 확대 등을 통해 친환경 금융 시장을 선도하고 있습니다.
효과적인 탄소중립 전략을 위한 제언
1. 단계적이고 실현 가능한 로드맵 수립
기업들은 야심찬 목표 설정과 함께, 단계적이고 실현 가능한 로드맵을 수립해야 합니다. 단기(~2030년), 중기(~2040년), 장기(~2050년) 목표를 구체적으로 설정하고, 각 단계별 투자 계획과 기술 개발 전략을 마련해야 합니다.
특히 비용 효율성을 고려한 우선순위 설정이 중요합니다. 맥킨지의 연구에 따르면, 온실가스 감축 옵션 중 약 40%는 순비용이 제로 또는 마이너스(비용 절감)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저비용 고효율' 옵션부터 우선 추진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2. 기술 혁신과 협력 생태계 구축
탄소중립은 기업 단독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도전입니다. 산업 내, 산업 간 협력을 통한 혁신 생태계 구축이 필요합니다.
국내에서는 현대차, SK, 포스코, 효성 등 12개 기업이 참여하는 '수소기업협의체'가 수소 경제 활성화를 위해 협력하고 있으며, LG화학, GS칼텍스, SK이노베이션 등이 참여하는 '탄소중립 그린정유 협의체'가 정유 산업의 탄소 감축을 위해 공동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한 스타트업 생태계와의 협력도 중요합니다. 기업 벤처 캐피털(CVC)을 통한 친환경 스타트업 투자, 오픈 이노베이션 등을 통해 혁신적인 탄소 감축 솔루션을 발굴하고 도입할 수 있습니다.
3. 탄소 관리 역량 강화와 정보 공시
효과적인 탄소중립 추진을 위해서는 기업 내 탄소 관리 역량 강화가 필수적입니다. 이사회 수준의 기후변화 거버넌스 구축, 탄소 인벤토리 고도화, 내부 탄소가격제 도입 등을 통해 체계적인 탄소 관리 시스템을 마련해야 합니다.
또한 투명한 정보 공시를 통해 이해관계자들의 신뢰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TCFD(기후관련 재무정보공개 태스크포스), CDP 등 국제 표준에 맞춘 기후변화 대응 정보 공시를 강화해야 합니다.
국내 상장사의 경우, 2025년부터 단계적으로 ESG 정보 공시가 의무화될 예정이므로, 이에 대한 선제적 대응이 필요합니다.
결론
기후변화 대응과 탄소중립은 기업에게 도전이자 기회입니다. 단기적으로는 상당한 비용과 투자가 필요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에너지 효율화를 통한 비용 절감, 새로운 시장 기회 창출, 기업 가치 제고 등 다양한 경제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행동하는 것'입니다. 탄소중립으로의 전환이 빠를수록 비용은 감소하고 기회는 증가합니다. 선제적으로 행동하는 기업은 규제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친환경 시장에서 선도적 위치를 확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업들은 단계적이고 실현 가능한 로드맵을 수립하고, 기술 혁신과 협력 생태계 구축을 통해 효과적인 탄소중립 전략을 추진해 나가야 합니다. 이러한 노력은 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뿐만 아니라,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인류 공통의 과제 해결에도 기여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