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저출산과 급속한 고령화에 직면해 있습니다. 2024년 합계출산율은 0.72명으로 OECD 국가 중 최저 수준이며,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18.4%로 이미 고령사회를 넘어 초고령사회를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구구조 변화는 국민의 노후를 책임지는 국민연금 제도에 심각한 도전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과연 현재의 국민연금 제도는 지속 가능할까요? 오늘은 데이터에 기반하여 저출산 고령화가 국민연금에 미치는 영향과 우리 노후의 안전성에 대해 심층적으로 분석해보겠습니다.
국민연금 제도의 현황
국민연금의 기본 구조와 현재 상태
국민연금은 1988년 도입된 이후 국민의 노후 소득보장을 위한 핵심 제도로 자리 잡았습니다.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2025년 기준 가입자 수는 약 2,275만 명, 수급자는 약 630만 명이며, 적립금 규모는 1,050조원에 달하고 있습니다.
현행 국민연금 제도는 '부분적립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는 현재 근로세대가 납부하는 보험료가 은퇴세대의 연금 지급에 일부 사용되고, 나머지는 적립되어 미래 연금 지급에 활용되는 방식입니다. 현재 보험료율은 소득의 9%이며, 평균소득자(월 소득 약 300만원)가 20년 가입 시 받는 연금액은 월 평균 약 85만원 수준입니다.
재정 전망의 악화
문제는 국민연금 재정 전망이 회차를 거듭할수록 악화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2023년 발표된 제5차 국민연금 재정계산에 따르면, 국민연금 적립금은 2055년에 소진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는 2018년 제4차 재정계산에서 예측한 2057년보다 2년 앞당겨진 시점입니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소진 시점 이후 부과방식으로 전환 시 필요한 보험료율입니다. 적립금이 소진된 2055년 이후에는 당시 근로세대가 은퇴세대의 연금을 모두 부담해야 하는데, 이때 필요한 보험료율은 현재의 9%가 아닌 약 28%에 달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는 현재 근로세대의 3배 이상의 부담을 의미합니다.
저출산 고령화가 국민연금에 미치는 영향
부양비 증가와 재정 부담
저출산 고령화의 가장 직접적인 영향은 부양비(노인 인구 대비 생산가능인구 비율)의 급격한 증가입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5년 현재 노년부양비는 24.6(생산가능인구 100명이 노인 24.6명을 부양)이지만, 2040년에는 60.1, 2050년에는 77.6으로 급증할 전망입니다.
이는 국민연금의 재정 수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생산가능인구 100명당 노인 인구가 10명 증가할 때마다 국민연금 수지는 약 3.5% 악화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저출산으로 인한 신규 가입자 감소는 보험료 수입 감소로 이어집니다. 출생아 수는 2015년 43.8만 명에서 2023년 23.0만 명으로 47.5% 감소했으며, 이러한 추세는 향후 20~30년 후 연금 재정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됩니다.
기대수명 증가와 지급 부담
고령화의 또 다른 측면은 기대수명의 증가입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5년 기준 65세 노인의 기대여명은 남성 19.8년, 여성 24.4년으로, 1990년(남성 12.4년, 여성 16.3년)에 비해 크게 증가했습니다.
이는 연금 수급 기간의 연장을 의미하며, 지급 총액의 증가로 이어집니다. 국민연금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평균 수급 기간이 1년 연장될 때마다 연금 지출은 약 5%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고령화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국가 중 하나로, 고령인구 비율이 7%에서 14%로 증가하는 데 18년, 14%에서 20%로 증가하는 데 추가로 9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는 프랑스(115년), 미국(72년), 일본(24년)에 비해 현저히 짧은 기간입니다.
수익비의 세대 간 격차
저출산 고령화는 국민연금의 세대 간 형평성 문제도 심화시킵니다. 국민연금 수익비(납부한 보험료 대비 수령하는 연금액의 비율)는 제도 초기 가입자일수록 높고, 후세대로 갈수록 낮아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국민연금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1955년생의 수익비는 약 4.6배인 반면, 1985년생은 약 2.0배, 2020년 출생자는 약 1.3배에 불과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는 후세대로 갈수록 연금의 혜택이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하며, 세대 간 갈등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국민연금의 지속가능성 확보 방안
1. 보험료율 조정과 급여 수준 재설계
국민연금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첫 번째 방안은 보험료율 인상과 급여 수준 조정입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의 공적연금 보험료율(9%)은 OECD 평균(18.2%)의 절반 수준에 불과합니다.
2023년 제5차 국민연금 재정계산 결과를 바탕으로 정부가 제시한 개편안은 단계적 보험료율 인상(12~13%)과 소득대체율 유지(40%) 또는 소폭 상향(42~45%)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조정을 통해 기금 소진 시점은 2055년에서 2061~2064년으로 연장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방안만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한국경제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적립금 소진 시점을 2100년 이후로 연장하기 위해서는 보험료율을 현재의 9%에서 적어도 15% 이상으로 인상해야 하며, 이는 정치적으로 쉽지 않은 결정입니다.
2. 수급개시 연령 조정
두 번째 방안은 수급개시 연령의 상향 조정입니다. 현재 국민연금 수급개시 연령은 단계적으로 상향되어 2033년에 65세가 됩니다. 그러나 기대수명 증가를 고려할 때, 추가적인 조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추계에 따르면, 수급개시 연령을 단계적으로 68세까지 상향 조정할 경우 적립금 소진 시점을 약 5~7년 연장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는 노동시장의 고령자 고용 상황 개선, 건강수명 연장 등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일본, 독일, 영국 등 많은 선진국들이 이미 연금 수급연령을 67~68세로 상향 조정했거나 계획하고 있어, 국제적인 추세와도 부합합니다.
3. 기금 운용 수익률 제고
세 번째 방안은 국민연금 기금의 운용 수익률을 높이는 것입니다. 국민연금기금의 최근 5년(2020~2024년) 평균 수익률은 5.3%로, 주요 글로벌 연기금인 캐나다 CPPIB(8.2%)나 노르웨이 GPFG(7.1%)에 비해 낮은 수준입니다.
국민연금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기금 운용 수익률이 1%p 상승할 경우 적립금 소진 시점은 약 5년 연장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투자 다변화, 대체투자 확대, 해외투자 비중 증가 등 적극적인 자산배분 전략이 필요합니다.
다만, 수익률 제고만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으며, 특히 고수익 추구 과정에서의 위험 관리가 중요하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4. 다층 노후소득보장체계 강화
마지막으로, 국민연금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닌 다층 노후소득보장체계를 강화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0층의 기초연금, 1층의 국민연금, 2층의 퇴직연금, 3층의 개인연금 등이 서로 보완하며 노후소득을 보장하는 체계를 구축해야 합니다.
보건사회연구원의 연구에 따르면, 현재 한국 노인의 다층 노후소득보장 체계 활용률은 28%로, OECD 평균(52%)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입니다. 특히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의 가입률과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제도적 지원이 필요합니다.
최근 정부는 '노후준비지원법' 시행, 퇴직연금 의무화, 개인연금 세제혜택 확대 등을 추진하고 있으나, 더욱 적극적인 정책 개입이 요구됩니다.
개인의 노후 준비를 위한 제언
1. 국민연금 가입 기간 최대화
국민연금 제도의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여전히 노후소득의 중요한 기반입니다. 따라서 가입 기간을 최대화하여 연금액을 높이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특히 임의계속가입제도(65세 이후에도 최대 5년간 추가 가입 가능), 추납제도(과거 미납 기간에 대한 보험료 납부), 출산크레딧(자녀 출산에 따른 가입 기간 추가) 등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2. 퇴직연금과 개인연금 적극 활용
국민연금만으로는 충분한 노후소득을 확보하기 어렵습니다.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을 통해 추가적인 노후 자금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금융감독원의 분석에 따르면, 현재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이 약 40%인 점을 고려할 때, 적정 노후생활을 위해서는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을 통해 추가로 30% 이상의 소득대체율을 확보해야 합니다.
3. 자산 포트폴리오 다각화
은퇴 후 장기간의 생활을 대비하기 위해서는 자산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금, 주식, 채권뿐만 아니라 부동산, 대체투자 등 다양한 자산에 분산 투자하여 리스크를 관리하고 안정적인 수익을 추구해야 합니다.
특히 인플레이션에 대비한 자산 배분이 중요합니다. 한국투자증권의 연구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물가상승률을 고려한 실질 수익률은 예금 0.2%, 채권 2.3%, 주식 5.7%, 부동산 3.8%로 나타났습니다.
4. 은퇴 시기와 지출 계획 재고
장수 리스크에 대비하기 위해 은퇴 시기를 늦추거나, 단계적 은퇴를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경제활동 기간을 연장하는 것이 노후 빈곤 예방에 도움이 됩니다.
또한 은퇴 후 지출 패턴을 현실적으로 계획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금융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은퇴 직후에는 여행 등 활동적 지출이 많고, 중반에는 지출이 다소 감소하며, 후반에는 의료비 등으로 다시 증가하는 'U자형 지출 패턴'이 일반적입니다.
결론
저출산 고령화는 국민연금 제도의 지속가능성에 심각한 도전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현행 제도가 유지된다면 2055년 적립금 소진이 예상되며, 그 이후에는 현재보다 훨씬 높은 보험료율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보험료율 인상, 수급개시 연령 조정, 기금 운용 수익률 제고, 다층 노후소득보장체계 강화 등 다각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특히 어느 한 세대에게만 부담이 집중되지 않도록 세대 간 형평성을 고려한 점진적 개혁이 중요합니다.
동시에 개인 차원에서도 국민연금 가입 기간 최대화, 퇴직연금과 개인연금 활용, 자산 포트폴리오 다각화, 은퇴 계획 재고 등을 통해 노후를 적극적으로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의 노후는 국가와 개인의 공동 책임입니다. 사회적 합의를 통한 연금 개혁과 개인의 철저한 준비가 함께 이루어질 때,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도 안정적인 노후가 보장될 수 있을 것입니다. 당장의 부담이 크더라도 미래 세대에게 더 큰 부담을 전가하지 않는 책임 있는 결정이 지금 필요한 시점입니다.